육아 예능 아닌 육아 현실 보여준 KBS ‘아이 나라’
육아 예능 아닌 육아 현실 보여준 KBS ‘아이 나라’
[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god의 육아일기’에서 ‘아이나라’까지, 육아 예능은 진화한다

2000년대 이전에는 없었다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선을 보인 TV 프로그램 장르가 있다. ‘육아 예능’이다. 당시로서는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아이돌 god는 아직 명실상부하게 일요일 예능의 최강자로 명성을 떨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새롭게 준비한 코너에 고정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아이를 단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20-30대의 남성 멤버들이 난생 처음 보는 아기를 온갖 좌충우돌을 거치며 기르는 포맷의 프로그램은 기대 이상의 호응을 기록했다. 약 35%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god 역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름을 각인하는 효과를 거뒀다. 한국에서 시작한 본격적인 육아 에능인 ‘god의 육아일기’(이하 ‘육아일기’)는 이렇게 시청자들은 물론 방송 관계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육아일기’는 기본적으로는 육아 예능이었지만, 동시에 연예인을 내세워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관찰 예능’의 초기적인 성격을 지닌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들은 아이를 기르며 때로는 온갖 애를 쓰고, 때로는 god 멤버들이 아이를 중심으로 하나로 모여 희로애락을 나누는 모습에 주목했다. 아직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육아일기’는 아이돌 멤버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였다.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프로그램의 목적은 ‘젊은 남성 연예인들의 육아 체험기’였지만, 동시에 최근 유행하는 ‘미운 우리 새끼’나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의 성격을 가졌던 셈이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육아일기’를 방송한 MBC는 한 번 불이 붙은 육아 예능이라는 포맷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 MBC는 ‘육아일기’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목표달성 토요일’에 ‘클릭비의 헬로 베이비’(이하 ‘헬로 베이비’)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그러나 ‘헬로 베이비’는 방송이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비판에 부딪치고 말았다. 한 명의 아이와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육아일기’와 달리 ‘헬로 베이비’는 일 주일마다 기르는 아이를 교체한다는 컨셉이라는 점도 비판을 받았지만, 등장하는 아이돌이 god에서 클릭비로 바뀐 것을 빼면 ‘육아일기’와 차이가 없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다. 당시 시청자들의 비판 의견을 전달한 ‘동아일보’의 2001년 2월19일 기사에 의하면,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를 데려다놓고 장난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인터뷰를 한 시청자도 있었다. 결국 ‘헬로 베이비’는 ‘육아일기’와 다르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폐지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KBS와 산하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방송한 ‘날아라 슛돌이’는 미취학 남자 아동들로만 이뤄진 축구팀의 경기와 일상을 소재로 삼았던 예능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스포츠 예능’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예능은 축구 경기와 훈련 장면 이상으로 축구팀 아이들의 평소 모습에도 많은 장면을 할애했다. 직접적으로 육아 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육아 예능과 비슷한 서사 구성과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육아 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은 2010년대 이전까지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육아 정보 예능을 추구했던 2007년 KBS ‘빅마마’, ‘육아일기’처럼 5명의 남자 연예인이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기른다는 컨셉의 2008년 SBS ‘좋아서’(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스타들의 리얼 육아 보고서), 육아 토크쇼라는 포맷을 내세운 2010년 KBS ‘해피 버스데이’는 모두 단명을 맞이했다.

‘육아일기’ 이후로 한동안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한 육아 예능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단초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방송된 SBS의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이었다. 붕어빵은 직접적으로 육아 예능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유명 연예인과 그들의 자녀 사이의 대화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토크쇼로 6년 동안 꾸준히 방송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3년 ‘육아일기’로 육아 예능의 시초를 만든 MBC ‘일밤’이 ‘아빠! 어디가?’를 통해 육아 예능은 다시 예능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게 되었다.

▲MBC 아빠 어디가
▲MBC '아빠 어디가?'.

기존의 육아 예능이 남자 연예인들이 아무런 혈연 관계도 없는 아이를 기르는 장면을 주로 보여줬다면, ‘아빠! 어디가?’는 ‘붕어빵’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으로 이어진 아버지와 자식 간의 모습을 초점에 삼았다. 여기에 KBS ‘1박 2일’처럼 매주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는 컨셉이 더해지며 시청자들이 더욱 주목했다. 중국에도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아빠! 어디가?’가 한동안 식어있던 육아 예능에 다시 불을 붙이자, 다른 방송국들도 육아 예능의 붐에 다시 뛰어들었다. SBS는 2014년 ‘오! 마이 베이비’를 통해 ‘육아 관찰 예능’을 선보였다. ‘아빠! 어디가?’가 육아 예능과 여행 예능이 결합된 형태였다면 ‘오! 마이 베이비’는 철저하게 연예인 가족의 육아와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오! 마이 베이비’가 2016년 종영된 것과 달리, 현재까지도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며 이어나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2013년 KBS ‘해피 선데이’를 통해 첫 방송을 시작한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이다.

‘슈돌’은 연예인 가족의 육아와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 마이 베이비’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독특한 면모가 있는 연예인 가족을 선정하며 빠르게 화제에 오를 수 있었다. 재일동포로서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일본으로 국적을 옮긴 사연을 지닌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부인 야노 시호, 그리고 부부의 딸 ‘추사랑’의 일상은 방송할 때마다 주목을 받았다. 송일국 가족 역시 흔치 않은 ‘삼둥이’(세쌍둥이) 가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한-민국-만세’라는 독특한 이름 등으로 추성훈 가족과 함께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 두 가족이 하차한 이후로도 축구선수 이동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 등 흔치 않은 특성을 지닌 유명 인사의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출연시키며 ‘슈돌’은 여러 부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장수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육아일기’와 ‘슈돌’, 그리고 그 사이에 수도 없이 명멸한 온갖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여성보다는 육아에 대한 관심이 덜 할 것 같은 ‘남성 연예인’을 메인으로 내세우며 아이를 기르는 과정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동시에 연예인들의 일상을 ‘관찰’한다는 컨셉을 수면 밑으로 구축하며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선사한다. 분명 육아가 중심에 서있을 것 같지만, 실제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물론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중심은 ‘육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간 제작된 다수의 육아 예능은 육아를 하나의 통로로 삼아 한 편의 ‘리얼 버라이어티’나 ‘스타 토크쇼’를 만드는 것을 초점에 두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 7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KBS의 새로운 육아 예능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이하 ‘아이나라’)는 기존의 육아 예능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이나라’는 기존의 육아 예능과 완벽하게 다른 프로그램은 아니다. 김구라, 서장훈, 김민종 등 남자 연예인이 전면에 서며, 이들이 아이를 기르며 생기는 좌충우돌과 평소에 보기 힘든 희귀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아이나라’는 최대한 프로그램의 중심을 ‘연예인’이 아니라 매주 이들이 만나는 아이들과 가족에 초점을 맞춘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아이를 제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등하원하기 어려운 일반인 가족들의 사연을 받고, 남자 연예인들은 ‘일일 등하원 도우미’로 아이들을 상대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KBS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KBS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그 모습들 사이에서 남자 연예인들은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를 자연스레 말하고, 프로그램 역시 육아의 어려움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나 혼자 산다’나 ‘미운 우리 새끼’ 같은 관찰 예능처럼 이 프로그램에도 ‘관찰자’ 역할을 하는 이들을 스튜디오에 배치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프로그램에 재미의 양념을 더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겪은 육아의 어려운 경험을 시청자 대신 전달하는 ‘대변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0년 ‘육아일기’가 시작한 이래, 약 20년 만에 비로소 육아의 어려움을 미화하거나 숨기지 않는 육아 예능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나라’의 시청률은 평균 2-3%로 높은 편은 아니다. 이미 같은 시간대에 MBC ‘전지적 참견 시점’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시청률의 양대 산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이유지만, 예능에서도 육아의 고통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결코 작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나라’는 육아의 속살을 예능이라는 형태로 드러내기를 시도한 최초의 시도라는 의의가 존재한다. ‘아이나라’의 중심 이야기가 남성에서 모든 젠더로, 그리고 더 다양한 육아의 속내로 넓게 뻗어나갈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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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8-11 12:08:35
"예능에서도 육아의 고통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결코 작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나라’는 육아의 속살을 예능이라는 형태로 드러내기를 시도한 최초의 시도라는 의의가 존재한다. ‘아이나라’의 중심 이야기가 남성에서 모든 젠더로, 그리고 더 다양한 육아의 속내로 넓게 뻗어나갈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에는 조금 힘들 것이다. 누가 고통이 있는 치과 같은 예능을 좋아하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현실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보고 직접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 어떤 것도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현실적 문제를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MBC는 공익을 위해 애쓰는 게 보인다. 공익방송이 현실을 미화한다면, 누가 취약한 이들의 삶을 알리겠는가. MBC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