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언론, 정치권력
숫자와 언론, 정치권력
[ 미디어오늘 1220호 사설 ]

19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2월28일 대구 유세를 벌였다. 정부는 이날이 일요일인데도 시민들 유세 참가를 막으려고 제일모직이나 대한방직 등 공장노동자를 전원 출근시키고 시내 중고교 학생도 모두 등교시켰다. 경북고 등 고등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2·28 시위를 벌였다. 4·19혁명은 이렇게 대구에서 시작됐다. 

박정희의 두 번째 대선은 1967년 5월3일이었다. 4월부터 공화당과 신민당이 잇따라 유세 대결을 벌였다. 윤보선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4월22일 서울 남산 유세를 서울신문은 15만명, 신아일보는 50만명으로 보도해 3배쯤 차이를 보였다. 

박정희 후보의 4월29일 장충단공원 청중 수는 신문마다 더 큰 차이를 냈다. 경향신문은 110만명으로, 동아일보는 25만명으로 보도했다. 경향의 110만명은 정부기관지였던 서울신문 100만명보다 많았다. 경향신문은 2판부터 100만명으로 오히려 줄여 보도했다. 

▲ 1967년 4월29일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충단공원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서울역사편찬원
▲ 1967년 4월29일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충단공원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서울역사편찬원

당시 각 신문은 정확한 정중 수를 산출한다며 미리 유세장 면적을 조사하고 항공사진도 찍었다. 평당 청중 수는 10~20명으로 산정했다. 신문마다 20명 넘는 기자를 현장에 배치했다. 당시 이상유 경향신문 기자가 1969년에 쓴 ‘한국신문의 내막’엔 이날 박정희 후보 유세장 보도 내막이 상세히 나온다. 

경향신문 현장 기자들의 슈팅(현장의 전화 구두보고)이 들어왔다. A기자는 40만 내지 50만명으로 보고했다. B기자는 1주일전 신민당 유세보다는 좀 더 많다고 했다. C기자는 타사 기자들 의견을 종합해 40만명으로 잡았다. 정치부장은 옆 신문사에 전화로 협의까지 했다. 부장이 고민하는 사이 기관원이 몇 차례 다녀갔다. 기관원은 “100만이 넘는다”는 의견을 던졌다. 정치부장은 100만명이란 숫자를 제시했다. 현장의 슈팅보다 배 이상이었다. 정치부 차장은 이에 반대했다. 다시 현장 기자는 아무리 많아도 60만명을 넘기면 창피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여기에 10만명이 더 붙여 110만명으로 정했다. 

1971년 박정희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유신 치하와 1980년 대선은 체육관 선거였다. 다시 국민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된 1987년 12월16일 대선은 숫자 장난에 이어 카메라 장난까지 더해졌다. 

▲ 1987년 12월13일, 13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대중평화센터
▲ 1987년 12월13일, 13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대중평화센터

1987년 11월28일 김영삼 후보는 대구 수성천변에서 수십만 관중을 모아 노태우 후보의 아성을 공략했다. 그러나 이 유세는 언론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다음날 김대중 후보의 서울 여의도 유세도 마찬가지였다. 집권 민정당 언론 참모는 기자들 앞에서 태연히 방송국 간부에게 전화로 선거보도를 지시했다. MBC 기자모임인 공정방송위원회는 1987년 12월15일 ‘불공정보도 사례모음’을 발표, MBC가 대선 보도에서 노태우 후보에게만 유리하게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12월12일 MBC 뉴스데스크는 민정당 서울 집회, 민주당 부산, 평민당 김천 집회를 보도하면서 민정 4분40초, 민주 2분25초, 평민 2분28초를 배분했다. 민정당 유세만 이례적으로 200만 인파가 모였다고 했다. 12월13일 저녁 뉴스는 김대중 후보의 보라매공원 유세 화면을 축소 조작하고, 김영삼 후보의 대행진 장면은 환영인파 배제 방향으로 재편집했다. 김영삼 후보의 11월22일 청주 유세 화면은 유세 시작 두 시간 전 촬영한 걸 사용했다. 

숫자를 놓고 우리 언론은 반세기 넘게 정치권력에 휘둘렸다. 지금은 누구도 숫자를 놓고 언론에 압박하진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언론은 숫자에 매달린다. 이제 그만 숫자의 유혹에서 해방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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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0-12 15:49:36
순위, 성적순, 지지율. 왜곡보다는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인간. 끊임없이 절대적인 기준을 찾으려는 인간이, 통계와 확률 그리고 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