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기재부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다
우린 기재부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국회는 기재부 허용범위에서 예산 삭감”…“기재부 총지출 결산자료 공개해야”

올해 기준 1년 정부지출은 470조원이다. 1년 GDP 1800조원의 4분의1이 넘는다. 5000만명으로 나누면 정부가 모든 개인에게 940만원씩 쓰고 있다. 이를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31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정부를 ‘전체 골의 4분의1을 넣는 편향적인 심판’으로 비유했다. “손흥민 만큼 골을 넣는 심판이 있는데 그 심판을 빼고 선수들끼리 겨룰 수 있을까. 경기 승패를 사실상 정부가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예산을 감시해야 할 이유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가 정부예산을 감시하는 걸로 알려졌다. 헌법 54조를 보면 국회는 국가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 국회 주 역할인 입법과 예산심의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이 위원은 “의원들이 법을 발의해도 국회에서 논의가 안 되면 임기만료로 폐기되지만 예산은 국회에서 논의가 안 되면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 기획재정부 로고. 기재부 홈페이지에 나온 소개를 보면 기재부는 "국가재원의 효율적 배분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책임지겠다고 하고 있다. 효율성과 형평성이란 두 가지 가치 중 효율성만 언급한 조직이다.
▲ 기획재정부 로고. 기재부 홈페이지에 나온 소개를 보면 기재부는 "국가재원의 효율적 배분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책임지겠다고 하고 있다. 효율성과 형평성이란 두 가지 가치 중 효율성만 언급한 조직이다.

 

헌법 57조를 보면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을 증액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이 헌법 조항과 압도적인 정보량 등으로 국회 견제를 피할 수 있다. 이 위원은 “국회는 예산을 깎는 능력밖에 없고 예결위(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회의원 50명이 7000개 넘는 사업을 다 검토하고 논의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회는 허수아비다. 이 위원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기간을 분석한 결과 기재부는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감액한 분량 안에서만 예산을 증액해줬다. 여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한다고 꼭 기재부가 국회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국회가 기재부 예산안을 증감하는 정도는 어떤 당이 정권을 잡았는지 와도 관련이 없었다. 정치권이 기재부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언론에선 매년 국회의원들이 선심성·지역구 예산을 추가하는 ‘쪽지예산’을 크게 보도한다. 마치 국회의원들이 예산심의라는 막강한 권한을 남용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실무를 들여다보면 이는 본질이 아니다.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고 예결위원 임기는 1년이다. 1년에 50명씩 4년이 지나면 100여명은 예결위원을 해보지도 못한다. 예결위원 중에서도 실제 예산 증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는 의원은 많지 않다. 예결위 전체회의나 예결소위에선 정무적 발언이나 감액 얘기만 나온다. 증액은 ‘예결위 소소위’라고 부르는 ‘밀실회의’에서 교섭단체끼리만 소수가 진행한다.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이 위원에 따르면 기재부는 국회가 감액할 수 있는 부분을 이미 고려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의원들이 소위 ‘쪽지예산’을 요청하면 기재부가 예산증액이 불가능한 사업을 국회에 통보한다. 이후 기재부가 감액이 가능하다고 허용한 예산들을 국회가 깎는다. 그 규모가 1조원이면 1조원 안에서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증액예산으로 잡아준다. 

▲ 2008년부터 2019년 정부예산안과 국회심의를 거친 최종안. 국회가 삭감한 금액 안에서만 증액이 이뤄졌다. 자료=이상민 수석연구위원
▲ 2008년부터 2019년 정부예산안과 국회심의를 거친 최종안. 국회가 삭감한 금액 안에서만 증액이 이뤄졌다. 자료=이상민 수석연구위원

 

이때 감액 가능한 예산 중 하나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관련법에 따라 국민들이 납입하고 대상자들이 해당 금액을 받아간다. 다시 말해, 다음해 예산안에서 얼마를 깎는다고 해서 실제 다음해에 국민들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 서류상 ‘국민연금 기금’의 잔고가 달라질 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재부는 ‘말 잘 듣는 국회’에 ‘의원들이 원하는 사업예산 증액’이란 선물을 많이 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국회에 선물을 조금 줄 수 있다는 게 이 위원의 설명이다. 

여야가 싸우는 판 자체를 기재부가 설계해놓은 셈이다. 국가부채비율이 40%를 넘으면 안 된다고 기재부가 제시하면 국회와 청와대는 40%를 기준으로 논쟁을 벌인다. 올해 예산이 슈퍼예산인지, 관리재정수지는 –3%를 넘기면 안 되는지 등 프레임을 제시하는 건 기재부다.  

청와대도 기재부를 쉽게 통제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확장재정을 펴겠다고 밝혔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2017년과 2018년 결산자료를 보면 긴축예산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재부가 청와대에 확장재정인 것처럼 예산안을 올렸고 청와대가 이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추구하는 비전이나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기재부가 왜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위원은 “근본적인 복지국가를 위한 제도가 늘어나지 않고 일자리안정자금,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정부만 바뀌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사업만 늘고 있다”며 “각종 융자사업이나 출자사업 등이 겉으로 예산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늘지 않는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 분석결과 문재인 정부 3년간 가장 예산이 많아진 부처는 금융위원회다. 세부내역을 보면 산업은행이 출자하는 혁신모험펀드 3000억원, 기업구조혁신펀드1000억원 등 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청와대가 확장재정을 말하면 기재부는 이런 예산을 늘린다. 개인에 비유하면 재테크 금액을 늘렸을 뿐 실제 소비가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위원은 어떤 부문에서 예산을 많이 썼는지도 살폈다. 사회복지, 일반·지방행정, 교육, 국방 순으로 비중이 컸다. 사회복지 예산을 들여다보면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고용’ 부문으로 증가율이 약 90%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일자리 안정지원자금 약 2조원, 문재인 정부 와서 345% 증가한 고용창출장려금(약 9000억원) 등 고용주에게 주는 이런 예산이 수치상 주목할 부분이다. 

언론에서 문재인 정부가 단기일자리에 예산 많이 썼다고 비판하지만 예산안을 보면 타점을 잘못 잡은 비판이다. 진짜 문제는 청와대가 고용문제를 해결할 비전을 예산에 반영하지 못한 채 5년 뒤 없어질지 모르는 예산만 늘린 기재부의 예산안을 바로잡지 못한 데 있다.  

▲ 기획재정부 연혁. 기재부가 맡은 여러 기능에 따라 조직이 나눠지거나 통합하는 과정을 겪어왔다. 사진=기재부 홈페이지
▲ 기획재정부 연혁. 정부수립때 재무부와 기획처를 만들었다. 재무부는 세제, 국고, 금융, 통화, 외환을 담당하고 기획처는 예산과 경제개발계획을 맡았다. 1994년까지 이 체제를 유지했다. 사진=기재부 홈페이지

 

이 위원은 “기재부가 권한만 있고 책임을 지게 할 수 없어 제어하기 대단히 어렵다”고 우려했다. 시민사회에서 기재부를 견제하기도 쉽지 않다. 

기재부는 투명하지 않다. 이 위원은 “열린재정에 총지출 기준으로 예산결산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총계기준으로만 공개하면 (회계간, 회계-기금간 지출 등을) 다 발라내서 총지출 기준으로 결산자료를 만드는 데 며칠이 걸린다”고 말했다. 재정전문가가 아니면 기재부가 공개한 총계기준 자료만으로는 올해 쓴 예산이 얼만지 파악조차 할 수 없다. 

예산서에 나오는 정확한 사업명을 알고 이를 담당하는 부처나 담당공무원에게 직접 요청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이 위원은 “우리가 실업급여로 부르는 걸 예산안에선 ‘구직급여’로 표기한다”며 “예산감시의 시작은 ‘구직급여’라고 부른다는 걸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 위원은 참여연대와 함께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부처에 시민사회 의견을 지적하고 이를 공문으로 보내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 위원은 “예산서에 시민사회 등의 입장을 넣는 칸이 있는데 대부분 공란”이라며 “예산서를 담당공무원과 대부분 국회의원이 보니까 이 빈칸을 채워야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기재부를 쪼개는 방안도 고민할 부분이다. 이 위원은 “기재부는 거시경제, 금융, 예산, 세제 등을 다루는데 현재는 금융(금융위원회)만 기재부 밖에 있다”며 “어떻게 쪼갤 것인지 각각 장단점이 있어 최선의 방식을 찾기 어렵지만 행정고시를 붙었다는 이유로 국회나 청와대 위에서 예산을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인지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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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1-01 12:53:34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맞지만, 세계 다른 국가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기재부의 금융기능도 중요하다고 본다. 좀 더 많은 세계적 사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