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아빠들’ 명단 공개는 명예훼손인가
‘나쁜아빠들’ 명단 공개는 명예훼손인가
“‘배드파더스’ 명단공개 이후 양육비 미지급 문제 공론화…허명 보호 위해 공익활동 위축돼선 안돼”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공개 웹사이트 ‘배드파더스’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재판이 내달로 다가왔다. 양육비 제도의 허점을 알린 공익적 활동이 양육비 지급 의무를 다하지 않은 미지급자의 ‘허위 명예’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이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엔 이론이 없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한부모 73.1%가 받아야 할 양육비를 못 받았고, 82.3%가 자녀 교육비 등 양육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확약이 이뤄진 건만 놓고 봐도 양육비 이행률은 32.3%에 불과하다. 법원이 양육비 이행명령을 내린다 한들 위반 시 처벌은 ‘감치’, 그마저도 잠적해 ‘소재불명’이 되지 않은 경우에나 가능하다. 

혼자 자녀를 키우며 돈·시간을 들여 소송에 이기고도 양육비를 받지 못한 이들은 ‘배드파더스’ 문을 두드렸다. 자원봉사격인 구본창씨가 제보자들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해 법적 지급 의무를 어기고 있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을 추렸다. 지난해 7월 사이트 운영이 시작된 이래 성별·연령을 불문한 양육비 미지급자 400여명의 이름·사진·직업 등이 공개됐고, 110여명이 양육비를 지급해 명단에서 삭제됐다. 구씨와 더불어 한명의 제보자(양육자)가 이번 사건의 피고인이다.

▲ 11월15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 11월15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7개 법인 12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배드파더스’ 공동변호인단은 이 사이트 활동이 공익 목적으로 이뤄진 일종의 사회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제가 이혼소송 전문인데도 양육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2015년 대법원 공개변론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 배드파더스 측에 먼저 연락을 드린 적이 있다”며 “배드파더스 활동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고, 연달아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다.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을 공개한 뒤 어떤 변화들이 실제로 있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은영 변호사는 “변호사들 중에서도 ‘강제집행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그래도 양육비를 못 받는다는 걸 몰랐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공론화 전까지 양육비 문제가 사회적 무관심 영역에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일 “양육비는 아동의 복리와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적시에 변제돼야 할 채무라는 특수성이 있는데 이는 적절한 금액이 적시에 지급돼야만 양육비 본래 가치와 의미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양육비를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개인 간 문제로 남겨둠으로써 한부모가족의 곤란은 그대로 방치되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불이행자에 대해 별다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양육비 지급 이행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사회규범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양육비 이행 강제가 불가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이래 각 주별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사업·직업 등 각종 면허를 제재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 계류 중인 양육비 미지급자 운전면허 취소·정지처분 등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종료와 함께 폐기될 위기다.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를 가를 관건 가운데 하나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명예를 어디까지 지켜줘야 하느냐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9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자녀 생존권을 위협한 부모들의 허위의 명예나 과장된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 나아가 양육비 정책 개선 활동에 동력을 제공하고 여러 아동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정의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위헌 논란이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되 적용은 최대한 지양돼야 하며, 배드파더스와 같이 공익적 목적과 기능이 넉넉히 증명된 활동마저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된다면 앞으로 진실을 밝히며 당사자와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모든 고발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 주장했다.

▲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실제 검찰도 앞서 배드파더스와 관련해 구씨 등에게 제기된 여러 건의 명예훼손 소송 건에서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해 기소하지 않았다. 일례로 지난 9월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은 고소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할 것이어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성립이 문제되나 (…) 고소인 입장에서 딸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피의자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기 위해 부득이하게 사이트 운영진에 도움을 청했던 것”이라며 “피의자들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수사 및 소추할 공공의 이익이 극히 적어 기소하지 아니한다”고 불기소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앞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배드파더스를 차단해 달라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양 변호사는 “이 사건을 진행하며 안타까운 점은 배드파더스에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을 올린 분들에 대해 ‘뭔가 이익을 노린 것 아니냐, 남의 일에 왜 형사처벌까지 감수하며 했을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수차례 검증을 해봤지만 그런 점이 없었고, 이로 인해 도움을 받은 분들이 100명을 넘어섰다”며 “앞으로 이 운동이 지속돼 입법이 미비된 부분을 구제하는 게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힘을 실어주신다면 많은 분들이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고, 법 개정도 당연히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19-12-14 16:33:21
개인적으로 양육비와 관련된 사항은 미국처럼 강화해야 한다. 요즘 국가 내 사건을 보면, 자기 일과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