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보호법의 위험 알리고 싸우겠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의 위험 알리고 싸우겠습니다
[ 기고 ]

오랜 세월 반올림 투쟁은 반도체 직업병 인정 투쟁이라고 불렸습니다. 자신의 병이 직업병임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이 나라에서, 피해자들은 직업병임을 입증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증거는 회사가 가지고 있었고, 피해자들은 자신이 일했던 일터의 위험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생산성과 품질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듣고 매일같이 실적을 추궁당했지만, 무엇이 위험한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반도체 회로를 찍고 녹여내는 포토공정에서 자신을 백혈병에 걸릴 수 있게 할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오븐뚜껑을 열 때 확 끼쳐오는 비릿한 납 냄새가 자신을 뇌종양에 걸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몰랐습니다. 제품불량을 검사하는 장비에는 X-ray가 사용되고, 이 X-ray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릴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회사와 정부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코 내놓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과 기록, 드물게 있었던 동료의 증언, 우여곡절 끝에 얻게 된 조각정보들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오랜 세월 피해자들이 한 명 두 명 늘어났고, 증언과 증거들이 쌓여왔습니다. 뜻 있는 학자들의 연구가 진행됐고 우리는 ‘반도체 공장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얘기했습니다. ‘반도체 공장이 위험하다’ ‘안전하게 바꿔야한다’ 새로운 증언과 증거들이 나타나면 새롭게 위험을 알렸습니다. 모르는 게 문제였지 알고도 침묵하지는 않았습니다.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인권운동더하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노동·시민사회·법률단체들은 1월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인권운동더하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노동·시민사회·법률단체들은 1월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해 8월 통과된 산업기술보호법은 바로 이렇게 위험을 알리는 활동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그 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기업은 그러한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에 조사 및 조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법안이 그대로 현실이 되면, 공장의 위험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검찰에서 출석요구를 받을 수도 있고, 사무실 컴퓨터와 서류들, 핸드폰을 압수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하게 단속하는 ‘산업기술’이 대체 뭔지 궁금해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를 찾아봤습니다.

‘모바일용 저전력 DRAM 기술’

산자부 고시에 산업기술로 명시된 사례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같은 모바일 기기는 충전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전력을 적게 소모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특성입니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의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특성을 구현하는 것이 산자부가 말하는 ‘산업기술’입니다.

‘세정용 및 식각용액, 도금용액’, ‘증착 및 식각 가스’, ‘photoresist 기술’

특수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용액이 아니라, 그냥 반도체를 세정하고 식각하고 도금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액이 ‘산업기술’이라고 합니다. 일본수출규제로 유명해진 불화수소 같은 식각가스, 포토레지스트 기술도 산업기술이라고 합니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수시로 반복되는 일반적인 공정들이고 흔한 재료이고 특별할 게 없는 기술들입니다. 반도체공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지 몰라도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늘상 접하게 되는 일반적인 재료와 공정이 바로 ‘산업기술’입니다. 

이런 식으로 지정된 산업기술이 반도체 분야에서만 230개나 됩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 280개가 넘습니다. 자동차, 섬유, 화학, 의료, 전력 등 33개 분야에서 3천개에 달하는 산업기술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각 행정부가 별도로 지정한 산업기술까지 더하면 어느 정도일지 다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2017년 2월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 당시 보인 방진복 전시. 사진=변백선 ‘노동과 세계’ 기자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2017년 2월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 당시 보인 방진복 전시. 사진=변백선 ‘노동과 세계’ 기자

 

이렇게 광범위한 산업기술에 대해서 앞으로는 위험해도 침묵하라는 것이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요구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위험하면 위험하다고 말하겠습니다. 

▲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반도체 공장의 독성화학물질만 노동자들을 병들고 죽게 하는 게 아닙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이 반도체공장의 독성화학물질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반올림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반도체공장의 독성화학물질을 알리고 싸워왔던 것처럼, 산업기술보호법을 알리고 싸워나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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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1-08 13:03:45
‘반도체 공장이 위험하다’ ‘안전하게 바꿔야한다’ 새로운 증언과 증거들이 나타나면 새롭게 위험을 알렸습니다. 모르는 게 문제였지 알고도 침묵하지는 않았습니다. <<< 자기 가족과 친척이 암에 걸려 죽으면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법은 법으로 바꿔야 한다. 위험요소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 한다. 4월 총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