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원, 우리가 기억할 마지막 이름
문중원, 우리가 기억할 마지막 이름
[ 기고 ]

낯선 이름 앞에서 종일 서성인다. 문중원. 그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아니, 떠나지 못한 사람이다. 40일이 넘도록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옆, 길 위의 냉동상자에 갇혀 있다. 그의 이름을 소리 내 불러본다. 세상의 불의와 비리에 눌린 무거운 이름이다. 문중원 기수는 지난해 11월 29일 세상을 등졌다. 15년 동안 일터였던 곳에서, 어린 두 자녀와 아내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기 전날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 택배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토록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젊은 가장이 왜? 남겨진 사람들은 거리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묻고 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4년 문을 연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일곱 번째다. 벼랑 끝으로 밀리고 밀려 결국 떨어진 사람들은 모두 기수와 마필관리사였다. 말을 소유한 마주나 마사회 임원, 혹은 기수와 마필관리사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조교사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조직의 가장 약한 자들이 반복적으로 같은 피해를 당할 때 원인은 어떤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병폐일 가능성이 높다.

▲고 문중원씨 아버지 문군옥씨가 1월6일 정부서울청사 앞 문중원씨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씨 아버지 문군옥씨가 1월6일 정부서울청사 앞 문중원씨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를 둘러싼 이번 사건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1992년 경마승부조작사건 이후 도입된 ‘개인마주제’다. 승부조작을 막겠다고 도입한 이 제도는 오히려 마사회에게 감독 권한만 주고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제도적 사각지대를 조장했다. 개인 마주는 말을 빌려주고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와 위탁계약을 맺게 했다.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주고 마방을 임대해 주는데 다시 조교사는 말을 관리하는 마필 관리사를 고용하고 말을 타는 기수와 계약을 맺는다. 결국 권력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 있는 기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법적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통해 마사회는 권한을 행사하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매년 8조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

보다 결정적 원인은 2004년 설립이후 부산경남 경마공원이 표방하고 있는 ‘선진경마체제’에 있다. 말만 선진이지 무한경쟁체제를 도입해 상금을 몰아주는 승자독식구조를 지향한다. 일부 기수 혹은 마필관리사가 높은 임금을 받는 반면 성적이 좋지 않은 기수나 말관리사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내몰린다. 더 심각한 변화는 선진경마라는 경쟁체제 도입 후 기수들 사이에 있던 동업자 의식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부상의 위험과 승부에 대한 극한의 스트레스를 일상적으로 견디며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양육강식의 세계로 돌입한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최고의 경기력을 끌어내기 위한 필수요소지만 경기가 끝난 즉시 경쟁자는 같은 스포츠에 종사하는 동업자로 인정된다. 치열한 난타전을 마치고 서로를 뜨겁게 안아주는 링 위의 복서들 사이에서 흔히 목격되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이다. 럭비에서는 경기가 끝났다는 선언을 ‘노사이드(no side)’라고 한다. 상대편으로 만나 경쟁을 했지만 경기가 끝나는 즉시 네 편, 내 편 없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이른바 선진경마는 스포츠가 스포츠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재하는 방식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수와 말관리사들을 밀쳐낸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모두가 발버둥치는 사이 공정한 승부대신 협잡과 부정이 끼어든다.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과 모형상여, 문씨가 타고다닌 말상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과 모형상여, 문씨가 타고다닌 말상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2020년 대한민국의 기수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불의와 비리에 저항하지 못 하고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과 더불어 호흡하며 최선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존엄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가?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문중원. 그의 무거운 이름 석 자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마지막 이름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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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1-13 17:15:05
정치가 복잡하고 이해충돌도 많지만 가장 따뜻한 손길과 기초적인 인프라인 것을 잊어버리면, 우리 중 가장 취약계층부터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