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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이름’ 기댔던 국회, ‘입법자 책임’ 높일 때
‘희생자 이름’ 기댔던 국회, ‘입법자 책임’ 높일 때
“고 김용균의 ‘핏값’으로 만든 법…눈꼽 만큼도 나아진 것 없다”
의원 이름으로 ‘네이밍’해 입법자의 정치적 책임 강화 고민해야
“이름 남긴 이들의 기본권 중요…언론, ‘받아쓰기’보다 ‘검증’을”

20대 국회 후반기엔 많은 이들이 희생자 이름이 붙은 법안의 통과 여부를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법안에 대한 관심이 식을 수 있다는 우려가 ‘떠난 이들의 이름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로 이어지곤 했다. 실제 법명 대신 관련자 이름을 법안에 붙이는 이른바 ‘네이밍(법안)’ 사례가 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름에 비해 법의 취지나 내용을 전하기 쉽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국회가 입법자로서의 역할이나 책임을 미뤄놓기 쉬운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네이밍 법안 중에선 사건·사고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가해자 처벌 및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민식이법’, 어린이통학버스 신고 대상을 확대하는 ‘태호·유찬이법’, 어린이 안전사고 시 응급조치를 의무화하는 ‘해인이법’, 주차장 안전관리자 책임을 강화하는 ‘하준이법’, 특수학교 차량 안전감독을 강화하는 ‘한음이법’이 대표적이다. 음주운전 기준과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의료기관의 환자안전사고 관련 의무를 강화한 ‘재윤이법’, 의료인 폭행 처벌 및 정신질환자 치료 지원을 강화하는 ‘임세원법’도 비슷한 유형이다.

이 가운데 민식이법은 정쟁으로 법안이 발목 잡힐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희생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입법 필요성을 알리고, 연대하고, 국회를 압박한 사례를 남겼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김민식군 이름을 붙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민식군 부모는 그해 10월 스쿨존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11월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식이법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입법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선거법·공수처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줄다리기하던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이 사실상 본회의를 무산시키자, 법안 처리를 고대했던 희생자 가족들은 의원들 앞에 무릎꿇고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이들은 민식이법 뿐 아니라 태호·유찬이법, 하준이법, 한음이법, 해인이법 등 길게는 수년 전부터 발의된 법안들이 남아 있다고 환기했다. 아이들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국민과의 대화) 대통령의 입법 지시를 끌어낸 것 역시 유족들이었다. 법안을 발의한 강 의원은 ‘문 대통령의 법안 제정 촉구가 있기 전까지 관련 부처들이 예산 문제를 들어 적극 협조하지 않았다’는 후문을 언론에 전했다.

▲ 2019년 11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왼쪽 두번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개회가 지연되면서 오늘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연합뉴스
▲ 2019년 11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왼쪽 두번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개회가 지연되면서 오늘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연합뉴스

국민 관심이 ‘입법 가늠자’ 된 현실…희생자 유족이 직접 나서

하준이법, 해인이법처럼 기존에 발의·통과된 개정안들의 한계를 확인한 유가족이 ‘제2 ○○○법’ 제정을 촉구하고, 법안 통과를 위한 활동에 나선 경우도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개별 사건이나 사람을 통해 초당적인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필요한 때가 있다. 보통 법안들도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걸 잊기 쉽기 때문에 익명화된 이슈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사안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 있다”고 법안 네이밍의 영향을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국회가 입법 추동력을 외부에 의존하는 정도가 과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법안을 논의하고, 다듬고, 이를 통과시키는 역할은 입법부에 있고, 그로 인한 책임도 입법부 몫이다. 결국 법은 국회가 의결한 대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대외적인 여론화 주체가 희생자로 비춰지면, 법안으로 인한 불만이 희생자에게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언론이 보도한 ‘민식이법 논란’처럼 말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입법 과정이 사회적으로 주목 받고 경각심을 일으켜 너무 늦기 전에 법이 만들어지는 건 의미가 있다”고 말한 뒤 “다만 여론에 떠밀려 법안이 만들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입법 절차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생자를 기리겠다는 국회에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결과가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 비판받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은 그해 1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2인1조 근무가 원칙인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에 홀로 내몰렸던 고인의 상황이 알려지면서 ‘죽음의 외주화’를 해소하자는 논의가 촉발됐다. 법안 취지는 당연히 위험한 작업의 도급을 막고,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회가 만든 법안과 정부가 만든 시행령에 따른 ‘도급 금지’ 대상은, 대폭 확대는커녕 고인이 담당했던 업무조차 해당되지 못할 수준이다.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 ‘작업 중지’ 조처를 취하도록 할 수 있는 요건 역시 지나치게 좁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의 말을 빌리면 “추락방지 난간대가 없는 건설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한다면 난간대 하나 추가한 뒤 작업을 재개할 수 있는” 현실이다. 박 실장은 “정치권에서 ‘위험의 외주화’로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레발 쳤는데 실제로 진전된 내용은 눈꼽 만큼도 없다. 김용균 노동자 ‘핏값’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새 법이 시행됨으로써 안전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업주 처벌이 증가했다거나 하청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아 처벌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며 “한마디로 이 법은 노동자 생명·안전을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018년 12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018년 12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성폭력 피해자 인권에 둔감한 이름도

신중하지 못한 ‘이름 짓기’가 물의를 빚은 사례도 있다. 조재범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다. 지난해 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애초 이 법안에 사건 피해자 이름을 붙여 ‘○○○법’이라 명명해 논란을 불렀다. 비판 여론이 불거진 뒤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은 ‘특정 선수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해당 법안을 ‘운동선수보호법’이라고 다시 명명했다.

이 밖에 20대 국회에선 전자발찌 착용 범죄자에 대한 주거지역 제한 및 특정인 접근금지를 담은 ‘조두순법’,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기준 범위를 확대하고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게 한 ‘양진호법’, 음주·약물 등 심신미약 상태로 인한 감형을 줄이기 위한 ‘김성수법’ 등 사건 가해자 이름을 붙인 법안들도 다수 처리됐다. 양진호법의 경우 대체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거나, 근기법을 적용받지 않는 4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및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배제된다는 등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법안과 연관된 인물의 이름으로 별칭을 만드는 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의정활동 홍보가 하나의 실적이나 마찬가지인 의원들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주목 받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준한 교수는 국회와 언론 모두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안명에 언급되는 이들의 기본권·인권을 배려하는 입법 활동과 함께, 언론의 보도 방향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인들이 법안 이름을 명명하는 대로 받아쓰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법안 네이밍으로 인해) 우려되는 부분들을 처음부터 지적해서 바로잡는 것도 언론 역할”이라 강조했다.

안병진 교수도 “법안을 부를 때 사람 이름을 붙이게 되면 레토릭(수사)보다는 인도주의적,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책임감이 중요할 것이다. 사람 이름을 붙여놓고 시민들 관심을 끌었다 유야무야 되는 것이야말로 당사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안 교수는 미국의 ‘매케인-파인골드법’처럼 입법자 역할이 두드러지는 네이밍 방식도 제안했다. 2002년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 민주당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과 함께 입안한 정치자금 규제법이다. 안 교수는 “이후 정치자금 문제가 후퇴하긴 했지만 이 법안은 여전히 기념비적이다. 한국도 입법자들이 상징적이고 책임 있는 입법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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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5-28 14:57:29
디플레이션 갭이라는 걸 아는가. 우리는 돈을 세계에서 마구 뿌려도 경제는 나아지지 않는 것으로 안다. 일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면, 무너질 국가는 수십 개가 넘었다. 입법도 마찬가지다. 그대들은 변화가 없는 것 같아서 허탈해하지만, 이런 정치 참여조차 없었다면 노동자는 아예 무시당했을 것이다. 작은 변화는 변화가 아닌가. 내가 극단주의자들을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세상 나아진 게 없다고, 큰소리로 투쟁만 외치며 다닌다. 서로 욕하고 대립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시간 지연되면 누가 가장 피해를 보나. 세상 무너질 것 같은 변화가 필요한가. 분쟁지역에서 살아보라. 매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